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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33 | 133 | 루이나는 같은 해 7월 제안을 거부했다. 이후 루이나 국내 정치가 급격히 요동치면서 협의는 재개되지 못했다. 1988년 6월 민주연합이 해산했고, 이듬해에는 [[루이나 헌정 위기|헌정 위기]]가 일어났다. 1991년 1차 개정이 이루어졌으나 다룬 것은 관세·노무 조항이었고, 형사재판권 조항은 그대로 남았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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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35 | | 결과적으로 1988년에 제기된 두 가지 요구는 13년이 지난 2001년 협정 2차 개정에서야 관철되었고, 그 계기는 이 사건이 아니라 1996년의 [[루이나군 진양지구 부부 살인 사건]]이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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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35 | 결과적으로 1988년에 제기된 두 가지 요구는 13년이 지난 2001년 협정 2차 개정에서야 관철되었고, 그 계기는 이 사건이 아니라 1996년의 [[루이나군 진양통 부부 살인사건]]이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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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37 | 137 | === 유고랜드 측 태도의 변화 ===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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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38 | 138 | 사건 이후 유고랜드의 실무 관행은 바뀌었다. 1988년부터 1995년까지 유고랜드는 살인 사건 3건과 성폭력 사건 11건에서 재판권 포기 요청을 거부했다. 협정 발효 후 첫 2년간 거부 사례가 한 건도 없었던 것과 대비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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